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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영웅'의 몰락으로 드러나는 미국의 치부
신천지, 약속의 땅이었던 미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미국의 1970년대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의 시대였고, 코폴라는 미국의 번영 뒤에 가려 있던 치부를 갱스터 영화의 양식을 빌려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2년에 시작된 대부 시리즈는 1990년대에 와서야 3부작이 완성됐다. 제1부는 비토 코를 레오네의 쇠락과 마이클의 성장, 제2부는 비토의 젊은 시절과 마이클 가족의 해체, 제3부는 마이클의 사회적 성공과 쓸쓸한 죽음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세편의 이야기구조는 모두 같다. 화려한 파티와 은밀한 거래에서 시작해 음모와 살인, 갈등이 빚어진 다음 혼자 남은 마이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코폴라는 마이클을 순수 악이자 미국적 부패의 총체적 상징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1편에서는 관객이 마이클에 은근히 동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는 권력에 대한 관객의 환상과 욕망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충족시켜 준 탓이기도 하니만, 이야기 구조 자체가 신화나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닮았기 때문이다. 갱스터 영화의 보편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고독한 영웅(마이클)과 그 적들, 그리고 영웅을 돕는 후원자(비토)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마이클을 동정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2편에서 코폴라는 마이클을 좀 더 고통스러운 인물로 묘사하기로 했고, 그와 더불어 아메리칸드림의 악몽을 좀 더 깊이 그리고자 했다.
시칠리아에서 피살의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비토는 성공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과 범죄의 대가로 이룬 것이다. 그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가족의 안전과 패밀리(조직)의 영화였다. 때문에 그러한 가치돠 사회적 가치는 늘 대립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은 이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으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암흑가의 보스에서 존경받는 기업가로 끊임없는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노력은 그를 암흑의 세계로 더 깊숙이 빠져들게 하고, 가족과도 멀어지게 만들며, 마침내 혈육의 형까지도 죽이게 한다. 아버지대에서 시작된 원죄는, 마이클이 아무리 씻으려 해도 씻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만 간다.
3편에서 마이클은 그 죄의 대가를 가장 처절하게 치른다. 1편과 2편에서 소외돼 가는 모습으로만 비치던 마이클이 3편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잃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코폴라는 미국적 악몽의 상징인 마이클을 처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죄에도 불구하고 코폴라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한다.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마이클 이후에도 그가 평생 소원했던 합법적 기업의 탈을 쓰고, 한층 더 냉혹한 조카 빈센트를 통해 사업을 계속 확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선과 악의 구분이 무엇인가. 미국적 가치의 숭고함은 어디에 있는가. 낙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민세대의 꿈과 희망은 처절한 악몽이 되어 후세대에 이어지고 있지만, 그 악몽이 꺠어질 가능성은 어디에도 보이자 않는다. 코폴라의미국 묵시록, 이 비극의 대서사시는 그래서 너무나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