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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 그린 표현주의 '얼굴'
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일 볼셰비키 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한,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
그는 원해 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1차 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후송된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마부세 박사>(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촬영감독 카를 프로인트와 권터 리타우, 미술감독 오토 훈테와 에리히 케텔후트, 카를 볼프레히트 같은 표현 주의 영화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독일 최대의 촬영소인 우파 스튜디오에서 310일에 이르는 대작 <메트로폴리스>의 촬영에 들어간다.
미래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행복하고 안락한 부르주아들의 자상낙원이고, 또 하나는 온통 기계로 둘러 싸인 노동자들의 지하감옥이다. 지상의 가진 자들은 지하의 빼앗긴 자들의 노동의 대가로 천국을 소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가의 아들 프레더가 우연히 비밀의 문을 통해 그 끔찍한 지하세계로 내려가 천사 같은 소녀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성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음모를 꾸민다. 그는 마리아를 납치한 뒤 마리아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지하세계로 내려보낸다. 가짜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을 계급투쟁을 향해 전진하다.
랑이 만들어내는, 이 어둡고 음침하면서도 무섭도록 열광적이고 흥분을 자아내는 계급투쟁의 우화는 공상과학영화라는 형식 속애서 무성영화특유의 압도적인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는 독일 영화의 새로운 전통을 위해 당대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나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모두 무시했다. 그 대신 영화 전체를 거대한 건축적인 유기체처럼 설계하고, 그 속에서 집단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구도,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그 사이로 늘어선 기형적인 세트, 기계적인 카메라의 이동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아마 표현주의 정신을 이렇듯 탁월하게 구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트로폴리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선동과 집단 봉기라는 계급투쟁의 결과를 공상과학영화라는 모호한 변명 속에서 이상적이로 낭만적으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자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된다. 결국 혁명은 폭동이 되고, 영화는 노동자계급의 패배와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무시무시한 인플레가 독일 전역을 휩쓸던 1927년 1월 10일 베를린에서 개봉되었다. 두 사림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의 제작자 윌터 윈저였다.
13년 뒤, 프리츠 랑은 나치 선전영화를 만들어달라는 괴벨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할리우드로 가 필름 누아르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그는 '실패한' 독일 영화의 바그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