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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도시:로베르토 로셀리니

by 연0916 2024. 7. 10.

무방비도시

네오리얼리즘 시대 서막 장식

사회 현실과 역사를 충실히 기록하여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영화의 시작은 아마도 네오리얼리즘부터이리라.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고,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도 네오리얼리즘 영화였다. <무방비 도시>는 네오리얼리즘의 서막을 장식한 영화이며, 그 방법론과 실제를 구체화한 로셀리니의 전쟁 3부작 가운데 하나다. 

2차 대전 동안 독일 점령하에서 비밀리에 기획된 이 영화는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에 촬영하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기록영화의 제작만을 허가했으나, 로셀리니는 이를 장폄 극영화로 만들어 종전 직후에 완성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동시 녹음을 위한 필름과 기자재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쌌고 촬영할 스튜디오도 구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무방비 도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자투리 필름으로 찍혀 화면의 질감이 오히려 다양해졌고, 로케이션 촬영이 돋보이는 기록영화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느슨한 플롯과 열린 결말의 이야기에 가미된 감상적 멜로드라마는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정수롤 보여준다.

독일군에게 살해된 한 신부의 실화를 근거로 만든 <무방비 도시>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완만하다. 시종 영화를 이끄는 인물은 레지스탕스 요원인 맨프레디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그가 피신하는 행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먼저 동료의 약혼녀 피나가 있다. 이미 아들이 하나 있는 피나는 약혼자가 독일군에 붙잡혀가는 것을 뒤따르다 결혼식 날 무참하게 총살당한다. 피나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돈 피에스트로 신부는 레지스탕스의 자금을 운반해 주고 맨프레디와 동료를 수도원에 숨기려다 체포된다.

이때 맨프레디의 옛 정부가 그를 하룻밤 피신시킨다. 그러나 맨프레디는 그녀를 경멸할 뿐이다. 결국 그녀는 마약과 사치품, 변태적인 애정행위에 팔려 그를 독일군에게 밀고한다. 맨프레디는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으며, 같이 체포된 신부도 결국 총살당한다.

그 밖에도 전쟁이 싫어 탈주했다가 체포되어 감방에서 목을 매는 오스트리아 군인과 게슈타포지만 나치 이념에 냉소적이고 결국은 그 이념이 실패하리라고 확신하는 술 취한 장교가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준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공평하면서도 자유롭게,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그린다. 주인공은 하나가 아니며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다. 억압적인 나치, 파시즘 아래서 모든 인물이 겪는 사건들 자체가 강렬하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통해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골목길에서 벌어졌을 일들,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레지스탕스 정신 또는 그에 반하는 타락의 모습을 훑어줄 뿐이다, 그 모습들은 하나하나가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영화는 여러 겹의 멜로드라마가 된다.

이 감상적인 비극에 희극적 요소들을 삽입하는 로셀리니는 관조적이고 희망적이다. 맨프레디를 쫓던 독일군들이 여자 들의 치마 밑 풍경을 보느라 그를 놓치는가 하면, 동네아이들이 어디엔가 폭약을 설치하고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부모에게 야단맞으며 끌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신부는 병자 성사로 위장하기 위해 멀쩡한 노인을 프라이팬으로 때로 눕히기도 한다. 로셀리니는 그 신부가 총살당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레지스탕스의 휘파람을 불게 함으로써 희망을 준다.

전후 이탈리아인들의 도덕성과 심리적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표출한 이 영화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가 지향해야 할 바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실도피 환상을  부추겨온 전쟁 전의 부르주아 영화에서 벗어나, 세계를 왜곡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요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로셀리니를 세계적 감독으로 만든 이 영화는 영화의 사회변혁기능을 실천한 영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