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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딜레마를 다룬 영상윤리학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1941년에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불우가게 보냈다. 한때는 신부를 꿈꾸다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배우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88년에 칸 영화제에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살인자와 애송이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인간의 윤리적 결단이 법적. 관습적. 판단기 중에 선행하며, 또한 높은 차원에 있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을 영상의 윤리학자로 드러낸 셈인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10부 연작인 <십계>의 한 편이기 때문이다.
<십계>는 폴란드 텔레비젼과 자우베를린 방송사가 같이 만든 텔레비전용 영화이다. 여섯 번째 연작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극장용으로 재편집된 바 있다. <십계>에는 영화작가 키에슬로프스키의 특질과 미덕이 원형 그대로 녹아 있다. 제목만 보고 종교적 우화를 연상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십계'를 현대 폴란드 사회를 건져 올리는 그물로만 사용한다. 그 그물에 올라온 열 장의 실존적 지도, 그것이 영화 <십계>이다.
한 첼로 주자가 있다. 그녀에게는 중병에 걸린 남편이 있고, 애인이 있다. 그녀와 남편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임신 중이다. 애인의 아이를 가진 것이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지워야 하는가. 그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의사를 찾아간다. 그녀는 의사에게 남편이 살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의사는 모른다고 말할 뿐이다. 그녀는 다시 말한다. 남편이 살아난다면 아이는 지워야 한다고. 그러나 만약 아이를 지웠는데 남편마저 죽어버린다면,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그러면 자기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그 러닌 살아날 확률을 말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의학상 죽음의 확률이 높은 경우에 더 많은 생존자가 발생하고, 살 확률이 높았던 경우에 느닷없이 죽어버리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생명은 의학의 범주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의사는 딜레마에 빠진다.
연작 중 두 번째 영화의 도입부이다. <십계> 연작은 아버지를 사랑한 나머지 차라리 의붓아버지이기를 바라는 소녀의 얘기, 수학적 원리로 세상을 재단하는 대학교수가 날씨를 잘못 예상한 탓에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얼음이 녹아 빠져 죽는 아들의 얘기, 늘 훔쳐보기를 하던 소년을 잃은 여인이 거꾸로 소년을 사랑하게 된 얘기 같은, 실존의 수수께끼와 맞닥뜨려 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로잡는 힘을 가진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이 연작에서 인간사의 어떤 근본적 딜레마, 일상 속의 비일상, 고뇌와 결단의 순간을 다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순간에 인간 삶의 본질과 존재의 불가해성이 더없이 날카롭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드러낼 뿐 그 이상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열 편의 연작은 각기 미완성인 채로 관객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십계>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오히려 텔레비전 영화라는 한계를 조건 삼아 독자적인 형식 미학을 추구한다. 이 미학의 기초에는 빛과 소리와 음악으로 유기적 전체를 구성하는 견고한 리어리즘이 놓여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피어난 것은 예의 영상의 윤리학이다. 그것은 특히 빛으로 표현된다. 한 화면 안에서 푸른빛과 흰빛과 붉은빛을 변화무쌍하게 나누고 모으는 빛의 미학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블루>, <화이트>, <레드>라는 색채 삼부작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