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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춘 아이 통해 들춰낸 독일 역사
<양철북>을 본 사람은 누구나 떠올릴 만한 것들이 있다. 어린아이의 장난스런 목소리지만 반음조쯤 높아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유리를 깰 수 있는 주인공 아이의 높은 기성,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말의 머리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뱀장어들, 연민을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로테니스크한 난쟁이 연기자들/
자극적인 기억으로 남는 이 영화의 시작은 동화 같다. 황량하고 드넓은 감자밭에서 촌부가 구운 감자를 호호 불며 먹고 있다. 경찰을 피해 달려오던 한 남자가 여자의 네 겹 치마 속에 숨는다. 여자는 그를 깔고 않아 경찰을 따돌리고, 남자는 치마 속에서 바지 앞춤을 여미며 나온다. 그렇게 잉태된 이가 주인공 오스카의 엄마다. 오스카는 자신이 태어나게 된 유래를 아주 자랑스럽고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는 동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자궁 속에서부터 엄마를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가운데 어떤 이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혼동하면서, 또한 그때부터 너무나 섬뜩한 어른의 눈빛을 한 아이로 오스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기이해져 간다. 아이의 목소리도 이제는 히스테리컬하게 들려온다. 그 아이는 세 살이 되던 날,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 특히 아버지의 눈을 교묘히 피해 성관계를 끈질기게 이어가는 얀 아저씨와 엄마,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방조하는 아버지의 형태에 실망하고는 더 이상 자라지 않기로 맹세하고 계단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세 살의 크기로 남아 있게 된다. 얀아저씨가 준 양철북을 분신처럼 메고 다니며.
그가 성장을 멈춘동안, 마을에서는 나치가 등극하고 위세를 떨치다가 패배한다. 엄마는 얀의 아이를 잉태한 체 자살하고, 아버지는 나치당원이 되며, 얀 아저씨는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나치에게 죽음을 당한다. 오스카가 사랑한 동갑의 마리아는 아버지의 정부가 된다. 또 독일군 위문공연에 나서는 서커스단에서 만난 난쟁이 여자를 사랑하고 그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패전 뒤에는 나치를 색출하는 소련군 앞에서 자신이 버린 나치배지를 다시 삼키게 함으로써 아버지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
오스카는 양철북을 두드리고 기성을 질러 유리를 깨는 것을 통해 세상에 개입한다. 엄마의 간통행위가 절정에 이르자 온 동네의 유리를 깨뜨림으로써 망치고, 나치 전당대회를 왈츠를 추는 무도장으로 바꾼다. 성적 열정과 정치적 엄숙함은 파괴되고 희화화된다.
귄터 그라스의 1956년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독일 역사에 대한 일종의 학습이다. 영화는 오스카라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시각이라는 우회도로를 통해 이 학습에 이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인류에 대해 최대의 죄악을 범한 이 역상[ 대한 접근을 아주 기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을 죽이고, 아버지가 남긴 정부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아버지의 짐을 지고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오스카는 어쩌면 독일 전후 세대의 자화상이자 새로운 독일 영화의 자기 선언일지도 모른다.
폴커 슐뢴도르프가 새로운 독일 영화의 대표적 감독들과 공유하는 감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해석에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벤더스나 파스빈더, 헤르초크가 보여주는 개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독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되 그 원천을 문학작품에서 찾는다.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서 이야기는 자극적이되 스타일은 그에 흡족한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양철북>은 칸에서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도 외국영화상을 받았으며, 새로운 독일 영화 가운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드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