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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학살과 승리의 서사시
장 르누아르와 그리피스,에이젠슈테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양영화 초창기의 맥락과 영화이론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서양영화가 동양영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비록 그 영향이 때로 강압적이었다 하더라도, 이 세 감독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이다. 특히 에이젠슈테인이 사회주의 영화를 통해 어떤 희망적 단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찾아가곤 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전함포템킨>이다. 포템킨 호의 수병 반란과 오데사 계단에서 벌어진 대학살극이 <전함 포템킨>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도 무기가 될 수 있으며, 뛰어난 대중교육책이자 선동임을 확인하게 된다. 억누르는 전함의 장교와 억눌리는 수병들 압살하는 코사크 군대와 피 흘리는 인민들, 이 모든 것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하여 표현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극장의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던 에이젠슈테인에게 그러한 서술상의 대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작 에이젠슈테인을 에이젠슈테인으로 만든 것은 몽타주로 알려진 그의 화법이었다. 그의 선배 푸도프킨이 필름의 결합을 통해 서술적 의미의 확대화 강조를 꾀했다면, 에이젠슈테인은 두 개의 대조적인 숏을 통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 코사크 병사가 내리치는 칼, 깨어져 뒹구는 안경, 클로즈업된 피 흘리는 여인의 얼굴, 이런 편집을 통해 에이젠슈태인은 상황 묘사라든가 감정의 고조를 넘어서서 관객들에게 단호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논리로 떨쳐나갔다. 물론 그는 이 오데사 계단 장면만이 아니라 많은 장면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크기로 숏들을 찍었다. 그는 찍은 것을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영화 창작의 처음이자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함포템킨>은 이렇게 포템킨 호의 선상 반란에서 시작하여 오테사 계단을 거쳐 마지막 승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숏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끌어간다. 서구 무성영화 특유의 지루하고 나른한 느낌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몽타주론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찮았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1929)을 비롯한 그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끝없이 이어졌고,그는 자신의 몽타주론을 완성학시 위해 낮에는 소련 영화학교의 강단에서, 밤에는 연구실에서 일했다. 급기야 그는 형식주의자로 매도당했고, 어떤 영화는 정부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물론 그는 '위대한 사회주의'를 믿었지만 그것을 온순하게 따르는 멍청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형식을 연구하는 사람을 형식주의자라고 한다면 매독을 연구하는 사람은 매독주의자다"라고 항변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전함포템킨>은 소련 영화의 명예로 남아 있을 뿐, 자신의 조국에서는 이어지지 않았다. 또 인물 전형화론 같은 그의 독특한 이론 역시 후학들의 과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몽타주 기법과 사회의식은 1930년대 영국의 사회적 타 큐멘 터리로 이어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제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그의 편집 기법을 써먹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몽타주론은 이 타락한 영화세상만큼이나 통속화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흥행작들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전함포템킨>을 읽어야 한다. 고전이어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세상과 아이들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