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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의봉인

    신과 대결하며 묻는 존재의 의미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은 1957년 세상에 나왔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이미 쇠퇴기를 지나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한 무리의 청년 비평가들이 누벨 바그의 전조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영국에서는 프리시네마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더 이상 신을 말하지 않았고, 유럽인은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대중문화의 중심은 고통의 세대에서 전후 세대로 옮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처럼 보였다. 그때 베리만은 전혀 뜻밖에도 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것은 마치 <제7의 봉인>의 시대배경이 중세인 것만큼이나 중세적인 질문으로 보였다.

    <제7의 봉인>은 14세기 중엽 십자군전쟁에소 돌아온 기사 안토니우스 블록의 귀향 기이다. 그는 청년 시절을 무의미한 전쟁에 흘려보내고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귀향길은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영화의 서막을 여는 바닷가 장면에서 체스판을 뒤로한 채 비스듬히 상체를 일으키는 블록의 표정은 이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사신이 찾아온다. 그는 체스 게임을 제안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의미를 찾기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해서이다. 마을은 페스트와 마녀 사냥의 집단적 광기가 휩쓸고 있다. 도처에 삶의 공포가 만연해 있으나, 신은 아무 대답이 없다. 그가 체스 게임으로 유예받은 삶의 마지막 목표는 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고해성사에서, 감각으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신은 왜 불완전한 약속 뒤로 숨어버렸는지를 격하게 묻는다. 그러나 '신은 침묵을 지킨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마을에서 벌인 두 번째 체스판에서도 그는 이긴다. 그러나 그가 절망 속에서 찾은 신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기 전에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과 숲을 지나면서 그는 다시 사신과 마지막 체스 게임을 벌이자만, 그것은 그가 유예된 시간을 반납하기로 결심한 뒤의 일이었다. 신은 아예 부재하든가 아니면 부재와 다름없는 침묵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이 절망적인 귀향기에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따서 '제7의봉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알다시피 그것은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가운데 마지막 봉인을 가리킨다. 그는 중세를 빌어 현재의 인류가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극단의 비관주의를 표출했거나 감히 다룰 수 없는 주제를 건드린 셈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인간은 그 봉인을 그대로 덮어둘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가지지 못한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제7의 봉인>은 교리 문답에 관한 것도, 신학 논쟁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결국 베리만이 강조점을 찍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이다. 그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공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신을 부정하며 신을 침묵하게 만드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블록이 체스 말을 쓰러뜨리며 광대 요프일가를 구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베리만의 예술가로서의 자기 존재와 인간에 대해 마지막 믿음의 끈을 잡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7의 봉인>은 중세적 주제가 아니라 현대의 삶의 공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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