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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인간의 광기를 형상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계보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이름이 없었다면, 그것은 허망한 신기루로 남았을 것이다. 코폴라는 1960년대 말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에 개혁 바람을 일으킨 세대 가운데서 가장 선배축에 속하는 세대이며, 영화과를 졸업한 뒤 누구보다도 먼저 '타락한' 상업영화체제에 도전을 시도했던 감독이다. 그리고 그의 1970년대는 빛나는 영화적 성취를 거둔 시기였다.
<대부>1,2편으로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둔 코폴라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암시를 얻은 소품 규모의 문제작 <도청>으로 1974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자신의 영화세계를 중간 결산할 작품을 궁리하게 된다. 바로 베트남 전쟁을 다룬 대작 <지옥의 묵시록>이다. 코폴라는 패기만만했지만 영화 제작은 숱한 난관을 겪었다. 주연 배우의 교체, 미군의 비협조, 때마침 촬영지였던 필리핀을 덮친 태풍 등, 결국 이 영화는 1979년에 가서야 세상에 공개됐다.
<지옥의 묵시록>은 잘 알려진 대로 조셉 콘라드의 소설[어둠의 심장]을 베트남 전쟁의 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어둠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점점 화면의 명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살의 쾌감, 죽음과 인접해 있는 게임의 스릴을 만끽하게 하는 초반의 전투 장면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의 시청각적 공명 효과는 미치광이 쿠르츠 대령이 등장하는 후반부 장면에서는 공격성을 감춘 인간 광기의 근원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바뀌어간다.
말론 브랜도가 연기하는 쿠르츠대령은 코폴라의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다. 그는 바이런의 시구를 읊조리면서도 사람의 목을 태연히 따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전쟁에서 공포를 느끼지만, 동시에 그 전쟁에 매혹당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보편적인 전쟁의 광기로 추상화시킨 결함이 남는 대신, 그 광기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한 점에서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룩하고 있다. 현대의 가장 끔찍한 재난인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이 전쟁에 대해 느끼는 공포를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재현한 스펙터클인 셈이다.
코폴라 감독은 괴물 같은 사람이다. 미국적 토양에서 그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예술가다. 동시에 베트남 전쟁을 미군들이 즐겼던 일종의 쇼,로큰롤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다분히 미국적인 감각을 지녔다. 쇼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술적인 영화도 만들고 싶다. 그 이중적인 욕망이 충돌하면서 영화사상 가장 심오하고 복잡하면서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전쟁영화가 만들어졌다.
코폴라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를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다. 우리의 인원은 너무 많았고, 돈과 장비도 너무 많이 낭비됐으며, 우리는 조금씩 미쳐갔다."
마약과 히스테리에 싸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쇼처럼<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영화 그 자체도, 영화 스테프들도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지옥의 묵시록>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레퀴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