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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미국을 유럽식으로 구성
헝가리 아가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천국보다 낯선>은 착상부터 도전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드림,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라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는 삭막하고 스산하기조차 한 미국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로 청년 감독 짐 자무쉬는 19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았고, 그는 단숨에 뉴욕 독립영화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천국보다 낯선>은 미국 영화지만 사실 미국 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기 떠돌지만 정신적으로 건조한 삶의 조건, 긴 페이드아웃의 화면 전환이 주는 형식의 단절감 따위는 무엇보다 대리 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지했던 미국 영화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자무쉬는 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
르브레송 같은 유럽 영화 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면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모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자무쉬 영화의 새로움은 유럽 영화에서는 이미 상투화한 진술을 미국의 상황으로 옮겨놓은 낯설음에서 온다. 예를 들면 에바와 에바의 사촌 오빠 윌리가 식탁에서 TV 디너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티브이 디너 안 먹을래?"
"안 먹어,배고프지 않아."
"왜 티브이를 디너라고 부르지?"
"그냥... 티브이를 보면서 먹으니까... 텔레비전 말이야."
"텔레비전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 고기는 어디서 난 거야?"
"뭐?"
"그 고기는 어디서 난 거야?"
"쇠고기야? 고기같이 보이지 않는데."
"휴... 상관하지 마. 어쨌든 여기선 이런 걸 먹는다고. 고기, 야채, 디저트... 그리고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되는 단조로운 양식은 황폐한 미국 생활을 암시하는 놀라운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자무쉬는 원래 이 영화의 1부는 <신세계>를 단편영화로 발표했는데, 평판이 좋자 두 단락을 붙여서 장편영화로 공개했다. 그러나 1부 <신세계>에 이어 추가된 <일 년 후>와 <천국>은 1부의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며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소이동 모티브에는 더 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다.
그러나 자무쉬는 이후에 만든 영화에서 <천국보다 낯선>의 신선함에 맞먹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종래의 미국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심이 모방과 짜깁기와 재구성이라는 1980년대 이후의 양식적 경향 속에서 추구된다는 점이다. 그러면에서 그는 아주 미국적인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