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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장비고

by 연0916 2024. 7. 7.

품행제로

교육과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실험영화

1929년 최초의 사운드 영화라는 <재즈싱어>가 프랑스에서 개봉되면서 아벨 강스와 마르셀 레르비에가 이끌던 1920년대 프랑스 무성영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할리우드와 경쟁할 만한 음향기술 시스템을 미처 갖추지 못한 프랑스 영화계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동안 <재즈 싱어>는 그 당시 5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았다.

즉시 미국과 독일의 음향기술이 프랑스 영화계에 도입되었고, 제작비가 세 배로 치솟았다. 경쟁은 치열했고, 아벨 강스는 자신의 성공적인 <나폴레옹>에 음향을 입혀 다시 제작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제 무성영화는 대감독 들은 연이어 몇 편의 실패작을 남긴 채 황혼의 전사로 사라져 갔다.

1930년대 초의 프랑스 영화제는 <파리의 지붕 밑>(1930)이라는 영화를 만든 르네 클레르와 함께 <품행 제로>의 감독 장 비고의 시대였다.

장 비고는 전기 작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예술가였다. 우선 아버지는 당대의 이름난 무정부주의자여서 감옥을 빈번하게 드나드었고, 자신의 이름마저도 '똥이나 먹어라'식으로 개명할 만큼 파격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열두 살의 병약하고 조숙한 소년이었던 비고는 이미 반가톨릭적인 주유주의자였다.'반역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이 소년은 학교 기숙사에서 영화 <품행 제로>에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문제아들을 만나 그야 말고 성적표의 품행란에 영점을 기록하며 십 대를 보낸다.

결핵을 앓기도 하던 이십 대, 그는 마침내 소련 다큐멘터리의 전설적인 거장 지가 베르토프의 아우인 보리스 카프만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도시 다큐멘터리인 <니스에 관하여>라는 걸작이다.

1932~1933년 사이에 만든 <품행제로>는 여름 방학을 집에서 보낸 코사와 브루엘이라는 두 소년이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시작한다.

담배 연기와 증기기차의 수증기가 어우러진 기차 안에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아이들은 악몽으로 끌려 들어가듯 학교로 돌아온다. 곧 그들은 '마른 방귀'라는 별명을 가진 기숙사 사감에게 벌을 받는데, 이 영화에서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작은 폭군의 모습으로 화학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위게라는 젊은 교사는 찰리 채플린의 흉내를 내고 만화를 그려주기도 하면서 학생들의 숨통을 터준다. 이 선량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을로 소풍을 가 떼 지어 한 숙녀를 따라가는 장면과 교차되는, 난쟁이 교장이 음모를 꾸미는 장면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것 같은 이 영화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교장과 교사들의 규율과 처벌에 맞서 코사 일행은 일대 소동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때 베개와 침대보에서 터저나온 하얀 오리털이 폭설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는, 세계 영화사의 환상적인 명장면 하나가 탄생한다. 느린 속도로 촬영된 이 부분은 사실 미적이면서 가치전복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이다.

마침내 마지막 시퀀스, 학교 축제를 맞아 국가, 종교, 군대를 대변하는 세 명의 손님이 도착하자 코사 일당은 지붕 위에서 책과 돌, 신발 따위를 던지며 이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침내 프랑스국기를 내려버리고 자신들의 혁명기를 올린다. 그리고 지붕 위를 걸어가며 하늘을 향해 노래한다.

<품행제로>는 종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조롱 때문에 '사회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상영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와 풍자 코미디,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이 실험성 높은 영화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인다. 프랑스 누벨 바그의 악동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나 영국 프리 시네마의  기수인 린제이 앤더슨의 <만약에...>처럼 제도 교육의 모순을 다룬 영화들은 사실 모두 이 영화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