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의 인간 소외 고발한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헐렁헐렁항 바지에 꽉 끼는 윗도리, 작은 중산모에 크고 낡아빠진 구두, 짧은 콧수염에 특유의 마당발 걸음, 그리고 옆구리에 지팡이를 낀 구시대의 신사. 서울의 수많은 레스토랑 간판에 새겨져 있어 이제는 그 분장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미도 다 바래버린 형상. 이 형상은 찰리 채플린이 지금부터 100년 전, 처음 영화에 출연하면서 창조한 방랑자의 모습이다. 시대를 거슬러 가는 이 방랑자의 분장은 모든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산업화를 향해 치닫는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존재의 상징이었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도와 자부심으로 전통을 고수하며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이물의 표상이었다.1936년도 영화 는 채플린이 방랑자로 분장하고 등장한 마지막..
교육과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실험영화1929년 최초의 사운드 영화라는 가 프랑스에서 개봉되면서 아벨 강스와 마르셀 레르비에가 이끌던 1920년대 프랑스 무성영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할리우드와 경쟁할 만한 음향기술 시스템을 미처 갖추지 못한 프랑스 영화계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동안 는 그 당시 5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았다.즉시 미국과 독일의 음향기술이 프랑스 영화계에 도입되었고, 제작비가 세 배로 치솟았다. 경쟁은 치열했고, 아벨 강스는 자신의 성공적인 에 음향을 입혀 다시 제작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제 무성영화는 대감독 들은 연이어 몇 편의 실패작을 남긴 채 황혼의 전사로 사라져 갔다.1930년대 초의 프랑스 영화제는 (1930)이라는 영화를 만든 르네 클레르와 함께 의 감독 장..
클로즈업 중심의 형식미 탁월"잔 다르크의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을 상자 속에 간직하고 싶다."루이스 부뉴엘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말이다. 하지만 에릭 로드 같은 영화사가 카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을 고통에 빠진 여성들(이 영화와 (1943), (1955), (1964) 같은 작품)을 가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남성우월주의자라고 평가했다.반면 질 들뢰즈의 견해는 달랐다. 그는 드레이어야말로 관객에게 최고의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든다고 평했다. 또 혹자는 "절규하는 소리가 나는 무성영화"라고 이 영화를 정의하기도 했다.그러나 어떠한 관점에서 보건 부정할 수 없는 점은 그가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과 미리멀리즘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드레이어는 사..
계급투쟁 그린 표현주의 '얼굴'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만일 볼셰비키 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한,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그는 원해 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1차 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후송된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