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영상미가 돋보이는 무겁지 않은 예술영화이 영화에서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중년의 여자도, 주인공인 이십 대 여성 델핀도 녹색 광선에 대해 말하고 생각한다. 태양의 적광이 수평선 아래로 잠기면 하늘과 바다에 잠깐 녹색 띠가 나타나는데, 이 녹색 광선이 빚어내는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 물론 살면서 이 녹색 광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그 진실의 아름다움과 만나기 위해 델핀은 바캉스 기간 동안 내내 해변을 따라 우울한 소요를 거듭한다. 하지만 에릭 로메르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에는 과잉이 없다. 델핀의 우울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무게이고, 마지막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도 드라마틱하지 않다. 삶의 표면을 이야기하다가도 얼핏 그 심층을 한 번 돌아보게..
스산한 미국을 유럽식으로 구성헝가리 아가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은 착상부터 도전적이다.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드림,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라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는 삭막하고 스산하기조차 한 미국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로 청년 감독 짐 자무쉬는 19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았고, 그는 단숨에 뉴욕 독립영화계의 총아로 떠올랐다.은 미국 영화지만 사실 미국 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이 물씬한 고독 이야기고향이나 조국이 떠난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특히 러시아인들에게는 좀 유별나 보인다. 에서 볼 수 있는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처절하며, 또 전혀 변함이 없다. 18세기에 실존했던 러시아의 음악가 파벨 소스노프스키는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로 음악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향수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귀향한 뒤,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르던 소련의 시인 고르차코프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고향과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자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바로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삶이다. 를 만든 직후..
복제 인간 통해 휴머니즘 해부1982년, 리들리 스콧의 는 스티븐 스필버그 와 동시에 개봉돼 흥행 경쟁을 벌이다가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관객들은 현실도피적인 의 유토피아를 어둡고 비관적인 의 디스토피아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이 영화를 '저주받은 걸작'의 명단에 올려놓은 이들은 컬트 영화광들과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에게 이 영화는 공간의 혼성 모방과 정신분열증으로 특징되는 포스트 모던 사회의 징후를 보여주는 일종의 교과서였다.2019년, 3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검은 비가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혼성 모방으로 채워져 있다. 세계도처에서 이주해 온 다양한 인종들, 코카콜라와 일본 여자 광고판, 용의 형사을 한 네온사인, 그리스 로마 시대와 바..